1944년, 전황의 판세가 이미 연합국으로 기울자 미국은 전후 세계질서 재확립과 금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미국의 브레턴우즈에서 44개의 동맹국과 신통화 제도에 관해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패권국이 된 미국의 USD를 기축통화로 한 금본위제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였고, 이것을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BWS)라고 부르게 되며 20세기 마지막 금본위체제와 고정환율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금본위제도의 시작과 위기
금본위제는 과거부터 존재했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19세기 영국을 필두로 시작되어 후반 유럽 통화회의에서 열강들은 자국의 통화를 금의 가치기준과 연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총력전이 전개되며 각 국의 전비소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자 각국은 금태환을 일시중단하며 화폐발행을 늘렸습니다. 이는 실물과 통화량을 연동시키던 금본위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었습니다.
전 후 열강들은 전후 복구와 다시금본위제로 복귀를 준비했으나 대공황의 발발로 무산되었고 결국 세계의 패권은 이 시기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시작, 금본위제 재정립
그리고 다시 한 번한번 1944년 새로운 패권국인 미국을 통해 다시 한번 금본위제가 실시됩니다. 이전과 차이점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 태환을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닌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 태환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여 타국의 통화는 미국달러와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화폐는 고정환율로 미국달러와 연계되고 미국 달러는 35달러에 금 1온스로 고정했습니다. 2차대전 후 세계의 금 70%는 미국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보유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고 이후 마셜플랜과 같은 유럽재건계획도 미국의 계획대로 할 수 있게 되었죠.
또한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기축통화 외에도 세계은행(The World Bank), 국제통화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을 설립했습니다. 이 기구들은 유럽의 회생역할을 수행했으며 오늘날 자유무역 중심의 경제체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을 위시한 자유무역체제가 성립되며 미국은 막대한 해군력으로 전 세계의 모든 해상무역로를 보호하며 동시에 세계게서 가장 큰 미국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기도 했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세계 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미국은 금본위제를 통해 환율을 통제하고 물가를 안정 적으고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한계
브레턴우즈체제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금의 보유량입니다. 금의 채굴환경이 나날이 좋아지면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금 채굴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금 보유량이 통화량과 연관이 되어있기에 금 채굴량이 늘어나면 디플레이션의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특히 베트남 전쟁과 소련과의 우주경쟁으로 인한 지출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자 이 또한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왔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금태환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드골 정부는 미국의 달러특혜에 대해 비난하면서 미국에 금 태환 요구를 하고 금을 확보해 갔습니다. 68 운동 이후 프랑스는 고정환율제 체제하에서 자국의 통화의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으나 비축한 금이 동나면서 달러를 통해 금과 교환하며 고정환율제에서 프랑의 가치보존을 위해 노력했으나 외려 이러한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려는 프랑스의 노력이 금본위제 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1971년 닉슨 쇼크라고 불리는 금태환 중지 선언과 금본위제 철폐라는 강수를 두게 되고 이로서 전 세계는 본격적인 변동환율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금융시스템의 인플레이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전에는 금의 채산량 증가에 따라 연동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이후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신용창출에 기반한 환율의 변동성과 시장의 통화량 증대에 따른 인플레이션 효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브레턴우즈체제
한국 또한 1950년대에 브레턴우즈체제에 들어갑니다. 한국도 전후 복구를 위해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미국과 관계가 가까워지며 원조에 의존하며 전후복구에 들어갔습니다. 해방 시 미국과의 고정환율로 하여금 1달러에 15원이었던 환율은 전후 인플레이션의 상승으로 인해 1달러에 600원으로 올랐습니다. 이후 60년대와 70년대에는 고정환율의 이점으로 산업화시기에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1달러에 125원으로 유지했습니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성장을 했기에 고정환율제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자 고정환율제 유지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정환율의 특성상 중앙은행은 지속적으로 환율에 개입해야 하므로 외환보유고의 부족으로 외환위기에 직면했으며 실제 경제상황과 맞지 않는 환율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닉슨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후 한국도 1974년에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완전한 변동환율제로 전환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겪지만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추진하며 한국은 변동환율제 하에서 유연한 환율정책과 더불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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